없던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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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멩 까뱅듀(Domaine Capendu). 오프너 없인 따기 어렵고 병이 무거워 휴대성도 떨어지는 와인의 단점을 개선한 ‘딱 한잔 와인’이다.

흔한 플라스틱 잔에 와인 한잔을 담고 두껑을 덮어 한국에서 할인가격 7,500원에 팔린다.

한병에 만원짜리 와인도 즐비한데 이건 맛이 그닥 의미있지도, 소비자가 자세한 품종을 고를수도 없지만(red or white만 고를 수 있다) 한잔에 한병 값을 받는다.

와인의 맛으로만 승부하던 기존 경쟁의 dimension에서 벗어나 담는 용기의 형태를 바꿈으로써 이동중이나 피크닉 가서도 쉽게 따마실 수 있는 유니크한 와인으로 재창조했다.

그 유니크함이 주는 대체 불가능한 가치가 한잔에 한병 값을 인정하게 한다. 결국 저 회사는 수많은 와이너리 중에 우뚝 살아남았다.

이런 식으로 생각해보면 이제 산업혁명이나 정보혁명처럼 특정 산업을 완전히 disrupt할 정도로 큰 사업 기회가 주어지는 격변기가 지났다 하더라도 이미 포화 상태의 제품을 제공하는 방법을 혁신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없던 기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산업화가 끝난 2014년에 산업으로 자기 사업을 하려면 앞으로 제품 자체뿐 아니라 서비스 형태의 혁신 가능성도 계속 관찰해야 할 것이다.

또한 언젠가 혁신에 성공한다고 해도 이제는 다양성의 가치만을 먹는 것이지(도멩 까뱅듀처럼) 시장 전체를(와인 시장) 심어삼키는 과점 사업자가 되는 것은 앞으로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 될 것이다.

고로 우리 세대는 앞으로 인생에 큰 ‘딱 한 방’ 보다는 작은 성취를 여러번 단계적으로 끊어 먹는 전략을 취해야지 않을까 싶다.

조금은 아쉽지만 더 어려운 세대를 살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일이라고 본다.

큰 조류를 꿈꾸며.

따지고보면 내가 지금 하는 걱정이나 고민들이 얼마나 하찮은지. 모임에서의 사소한 관계 걱정, 맘에 안드는 사람에 대한 감정들, 평생 가야 내 인생도 하나 완성 못할거면서 멘토링이나 강연의 형식을 빌려 남의 인생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들까지 하나같이 마뜩찮은 일이다. 쪽은 지인들의 어쩔 수 없는 부탁 정도로만 팔아도 충분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큰 조류.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큰 일인지. 얼마나 크게 될 수 있는 일인지, 무엇이 다가오고 있는지, 바로 그것이다. 내가 오랫동안 만든, 세상에 하나쯤은 꼭 있을 필요가 있는, 그래서 별로 많이 쓰진 않지만 누군가 열렬히 쓰는 사람이 있는, 그런 것은 큰 조류가 아니다. 미련이다.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얼마짜린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거기까지 가는데 얼마나 오래 걸릴지. 여기까지 오는데 3년 걸렸는데 지금의 두배로 뛰는데 3개월 걸리는 그런 것은 없다. 모든 것을 믿을 수 없는 벤처 환경에서 오로지 믿을 수 있는 것은 과거에 우리가 그려온 그래프와 패턴뿐이다. 패턴과 그래프를 설명 안되게 뛰어넘는 그런 성장은 없다. (사실 가끔 있다. 0.0001% 정도. 그것은 사실 경영보단 운의 영역이므로 무시..)

고로 패턴과 그래프를 보고 냉정하게 깨달을 수 있는 인사이트가 있어야 한다.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하고 바꿀 줄도, 지금 좋아도 언젠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믿고 시야를 항상 넓게 열고 있어야 한다. 미쳐야 성공하지만 지금의 것에 미쳐 일하다가도 혹시 이 길이 아니면 어떻게 할 것인지, 다른걸 찾아야 할 때 뭘 제시할 것인지 눈과 귀는 쫑긋 세워두고 날카롭게 캐치하고 있어야 한다.

아닌걸 냉정하게 알려면 끊임없이 의심해야 한다. 내 아이디어, 나의 실행이라도 의심해야 한다. 그래야 극극소수에 들어 살아남는다. 그렇게 계속 살아남다보면 생존이 습관이 되고 어떤 시그널을 동물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럼 가끔 시간의 힘 덕분에 큰 조류를 맞딱뜨리거나 발견할 수도 있게 된다.

아주 가끔 큰 조류를 멀리서나마 마주하게 되면, 그 크기와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커서 이건 내가 들어갔다가는 그저 휩쓸릴지, 올라타볼 수나 있을지 두렵고 혼란스러운 때가 오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것은 너무나 엄청나서 잘 올라타기만 하면 내가 준비한 배가 그럴싸한 군함이 아니라 그저 뗏목이라 할지라도 하늘 끝까지 가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큰 조류를 대비하고 상상하고 머잖아 직접 올라타려고 노력하는데 그런 심대한 꿈을 꾸는 상황에서 따지고 보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시시콜콜한 걱정이나 고민들은 얼마나 시간낭비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되는 것이다.

여러모로 거시적인 사고는 나의 편협함을 일깨우고 시간 지나면 싹 잊혀질 부질없는 인생의 사족들을 정리해주며 인생에 더 오래 가고 남이 아닌 스스로의 행복에 도움이 될 본질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준다.

참으로 진작 알았으면 좋았을 배움인데 또 한편으론 아주 기나긴 어설픈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어느날 문득 가슴으로 깊이 들어오는 것 아닌가 한다.

살아남기 위해서.

전략이라는 것이 어떤 로드맵을 그려놓고 그대로 실행하면 되는건 거의 없는 것 같고, 매일 가정과 불확실의 영역에 있던 미래가 금세 과거가 되며 많은 부분, 때론 전체까지도 시시각각 달라지는 것 같다. 이런 세상에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은 지켜야 하는 것과 바꿔야 하는 것의 경계조차도 두지 않는 완전한 오픈 마인드와, 새로운 모멘텀을 지속적으로 갖기 위해 계속 새로운 일에 새로운 방식으로 도전하는 것 아닌가 한다. 요컨데 불확실성을 내 힘으로 피할 수는 없고, 다만 나름대로 최대한 헷지하는 방법은 현재 하는 일과 방식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기회를 만들고 쫓는 것일테다. 참 어렵고 힘들지만 그것은 살아남기 위한 평생의 과업이다.

제휴

제휴는 좋은 판을 만들어 깔아두면 알아서 쏟아지는 것이라 느낀다. 회사와 회사가 만나 서로 시너지를 높이기 위해 하는 제휴는 실제로 해보면 양쪽 모두는 커녕 한쪽에 득이 되는 경우를 찾기도 힘들지만 그래도 아주 간혹 압도적으로 좋은 딜이 생기기도 하기 때문에 마냥 신경을 놓고 있어서는 안된다.

특히 요즘처럼 마켓이 중립적으로 기능하지 않고 이미 사용자를 확보한 업체들을 중심으로 빈익빈 부익부로 흘러갈 때에는 기업 간 제휴가 마켓에 큰 변화를 줄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시나리오를 계속 만들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억지로 쥐어 짜내 만든다고 좋은 제휴가 나오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남들이 제휴 요청이 없을 때에는 ‘내 제품이 시너지를 낼 것처럼 안보이나보다’ 생각하고 내 제품을 남이 봤을 때 더 구미가 당기고 같이 해보고 싶게끔 조정하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요즘 우리에겐 옛날에 다른 어떤 제품을 만들 때보다 높은 트래픽을 갖고 있으면서도 제휴 요청이 쏟아지지는 않는데, 옛날엔 오히려 더 적은 트래픽을 갖고도 하루에 여러 통씩 제휴 제안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차이는 상대방이 생각할 때 필요한 부분인데 직접 만들기는 귀찮거나 어렵고 기대 효과를 예상하기도 어려운 부분에서 제휴 요청이 발생하는 것 같다. 그때 제휴 상대방이 아주 큰 대기업이거나 큰 트래픽 또는 돈을 가진 곳이어서 제휴가 성사될 경우 우리가 이득을 보는 경우면 아주 좋은 딜이다.

그런 딜을 따기 위해 위의 저 조건: ‘직접 만들긴 어렵거나 귀찮고, 직접 했을 때 기대 효과도 예측할 수 없는 한 분야’에서 유일하거나 1등 회사가 되어 있으면 우리에게 기회가 오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한가지: ‘유행을 타서 마켓의 반짝 조명을 받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경우’에도 제휴 요청이 쏟아진다. 이 경우는 제휴 상대방이 잘 모르는 분야인데 우리가 잘 나가는 회사로 비춰져 있을 때 역시 실질적인 트래픽이나 매출을 떠나 많은 요청을 받게 된다.

그러니 많이 찾아오지도 않고 잘 떠오르지도 않을 때는 제휴 안을 만들려고 쥐어 짜내기보다는 내 제품이나 회사를 위 조건들에 부합하도록 약간 조정하는 편이 빅 딜의 기회를 만나는 방법이 아닐까 한다. 물론 혼자서도 잘 해야겠지만 좋은 제휴도 많이 되면 더 좋으므로.

SNS, 더 선한 활용을 고민하며.

사실 자랑할 것이 그다지 많지 않을 때 사람들은 페북이나 카스 같은 SNS에 자랑을 하는 것 같다. 자랑할 일이 아주 많으면 올릴 이유도 없겠지. 그런데 그걸 보는 사람들은 ‘아 남들은 다 이렇게 멋지고 행복하게 살고 있구나’하며 우울해한다. SNS를 안보면 안우울할텐데 또 남들이 어떻게 사나 궁금하여 하루종일 들락날락한다. 그러다보면 자기 삶은 사실 그닥 별로가 아닌데도 왠지 실망스럽고, 나만 방구석을 굴러다니는 것 같아 슬퍼진다.

그러다 아주 가끔, 나에게도 자랑할만한 이벤트가 생긴다거나 친구들하고 아주 멋진 곳에 가서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일을 하고 있다면 사진과 함께 ‘원래 내가 항상 이렇게 멋지게 살아온 듯’ 시크하게 글을 써 SNS에 올린다. 그럼 내 글을 본 누군가도 내 일상을 보며 똑같은 부러움과 자괴감을 얻는다. 나중에 그 친구도 똑같이 좋은 곳 가서 글을 올리고 나는 또 부러워한다.

SNS는 자주 못보는 가족이나 친구끼리 대화를 나누거나 헤어진 인연을 다시 만나는 등의 순기능도 분명 있지만 원초적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되받으며 강화되고 성장해가는 역기능도 있는 것 같다. 누군가 나의 자랑질을 보아준다는, 그래서 타인에게 상처주면서 나도 가치있는 사람임을 확인받는 불쌍한 현대인의 굴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하여 쓸데없이 위화감을 조성하고 잘 모르는 타인에게 상처를 줄지 모르는 내 삶의 자랑할만한 순간들은 앞으로 가급적 혼자 보관하려고 한다. 잘 모아두었다가 순간적인 자랑의 형태가 아니라 필요한 이들을 위한 기록의 형태로 언젠가 공유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히 값진 일이리라.

앞으로 나의 SNS는 어려운 문제에 봉착해 타인에게 도움을 구해야 할 때나, 나보다 어려운 타인이 조금이나마 나아지도록 돕거나 기회가 필요한 이들에게 힘을 써주어야할 때, 그럴 때 주로 활용하고자 한다. 나의 건재함을 과시하기 위해 남에게 상처주는 매체가 아니라 나의 작은 힘으로나마 남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매체로 더욱 선하게.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내가 어떤 선한 일을 할 수 있을지는 조금 더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가진게 없다고 하여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솜노트 2.0으로 100일간 배운 것들

솜노트 2.0이 출시(2014.01.14)된지 오늘로 104일이 지났다. 2012년 4월 1.0 버전이 나온지 2년만의 메이저 체인지였다. 모든 UI를 다 뜯어 고쳤고 사용성도 보다 쉽고 직관적으로 고쳤다. 유료 기능들도 과감히 무료로 풀었고 자잘한 기능 개선과 버그 개선이 100여가지에 이르렀다. 1.0때도 그렇게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organic 성장이 거의 없었다. 절치부심하고 2.0을 오래 만들어 왔지만 걱정도 많았다. 이것도 안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들. 어쩌면 노트 카테고리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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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론 하락세에 있던 솜노트를 완전히 반등시켰다. 이제 스스로도 편하게 쓸만한 좋은 제품이 되었다. 트래픽은 100일만에 2배가 뛰었다. 설치 기기수, DAU(Daily Active Users), 결제전환율 모든 부분에서 100일만에 2배가 뛰었다. 앞서 1년 8개월 걸린 것을 이후 100일만에 더블을 했다. 물론 2.0만의 위력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미 1.0때부터 차곡차곡 쌓아 온 소비자들의 제품에 대한 신뢰, 브랜드 인지도 이런 것들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에 2.0이 나와도 내려받아 쓸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니 뭘 대단히 잘했다기보단 그냥 어려운 체크포인트를 무사히 건넜다 정도로 얘기할 수 있을까?

다른 것보다 2.0으로 오면서 달라진 것은 우리가(정확히 말하면 나부터) 지표를 면밀히 살피기 시작한 것이다. 부끄럽지만 그동안 우리는 Growth hacking 같은 것들은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안한게 아니라 몰랐다는 표현이 더 솔직하리라. 그걸 어떻게 하는건지 잘 몰랐고 그러니 해야한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으면서 막상 시작을 하지 못했다. 총론에 대해선 아티클을 좀 읽어보다가도, 막상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 것인지 가르쳐주는 곳이 없어서 실제 제품에 녹이지는 못했더랬다.

그러다 글로벌에서 잘하고 있는 젤리버스에 찾아가서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지 반나절 정도 배울 기회가 있었는데, 결국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사장이 바뀌면 모든게 바뀐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날로 Google play와 Apple AppStore 관리자 콘솔을 비롯해서 우리 관리자 모드, Google Analytics, Flurry, AppAnnie 등등 통계툴들을 무진장 보기 시작했다. 사용자 댓글도 직접 달고 우리 경쟁 카테고리가 아니더라도 다른 앱들은 순위가 어떤지 들여다 보기도 시작했다. 물론 아직 젤리버스가 하는 노력에 비하면 절반도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글로벌에서 잘하는 회사들이 앱 개발 외에도 앱 마케팅과 유저와의 대화에 들이는 정성은 생각보다 훨씬 더 집요하고 막대한 시간 할애를 요구한다. 이제 시작한 나로서는 아직 그만큼까진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이제 시작한 지표에의 집착과 실험, 그리고 그로스 해킹 등은 조금씩 효과를 보고 있다. 별거 아니지만 누군가의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느낀 것들을 좀 공유해 본다.

1. 그들은 왜 편리한 기능을 없앴을까?

나는 좀 의아했던게 경쟁제품인 에버노트가 어느날 튜토리얼을 없애는, 제품적으로 보면 일종의 퇴행을 했다는 것이다. 예전에 튜토리얼이 있을 때에는 사용자가 에버노트를 이용해 공부도 할 수 있고, 업무도 볼 수 있고, 주부는 레시피보며 요리도 할 수 있고 하는 등의 사용 설명서를 보여주고 나서 회원가입과 로그인 창을 띄웠다. 그런데 별안간 어느날 그렇게 굉장히 잘 만들어 놓았던 튜토리얼을 없애버렸다. 그리고는 지금의 에버노트를 깔면 처음 나오는 화면은 그냥 저런 식이다.

이미지‘소중한 아이디어와 기억을 저장하세요.’ 덜렁 이런 썰렁한 멘트 하나 있고 손가락으로 넘기면 대뜸 계정부터 만들라고 한다. ‘이 제품이 뭐다, 이 제품을 쓰면 뭐가 어떻게 어떻게 좋다.’ 하는 내용은 일절 없다. 그러다보니 제품적으로는 튜토리얼이 있던 편이 사용자에게 더 설득력있게 정보를 전달하고 다음 허들로 넘어가는 것 같아 가입 동기도 높아질 것 같은데 의외로 더 불친절하게 간 것이다. 나는 첨에 이걸 보고 좀 의아했다.

그래서 솜노트는 반대로 한번 가봤다. 올해 솜노트 2.0을 내면서 처음 앱을 깐 사용자에게 로그인 창을 노출하지 않은 것이다. 그냥 첨엔 아무 허들 없이 편하게 써보다가 ‘원할 때 자연스레 넘어오시오’ 한 것이다. 그랬더니 가입전환율이 반의 반으로 뚝 떨어졌다. 시간이 지나도 회복세가 더뎠다. 충분히 써보다 가입으로 넘어오는 사용자는 예상보다 적었다. 그래서 최근 다시 솜노트가 2.1로 업데이트할 때 로그인 창을 넣었다. 이제는 솜노트 앱을 깔고 첫 실행하면 이게 뭐다 설명도 없이 에버노트처럼 로그인부터 하라고 한다. (물론 우리는 에버노트랑 달리 X 버튼이 있어서 가입을 미루고 우선 써볼 수 있게 하는 기능이 있다.)

그리고 기존 솜클라우드나 카카오 계정 외에도 Google과 Facebook 계정으로도 로그인할 수 있게 했다. 한술 더 떠서 로그인을 안하고 쓰는 사용자에게는 이틀에 한번씩 귀찮은 로그인창이 뜨게 했다. 결과는? 바로 다음날부터 가입자가 2배가 뛰었고 이 기울기는 현재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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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좋은 제품이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해 온 좋은 제품이란, 손에 든 즉시 만져보며 물 흐르듯 이해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으며 기대하던 편의 그 이상을 줄 수 있는 제품이다. 그런데 이 그로스 해킹이라는 것을 조금씩 하다보면 좋은 지표를 위해 좋은 제품을 일부 훼손해야 하는 일도 발생하곤 한다. 내가 볼 때 여전히 앱을 어떻게 쓰는건지 알려주고, 원할 때 추후 가입할 수 있는 제품이 제품으로서 더 나은 제품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용자를 배려하는 여러 장치들이 서비스 지표에는 실제 그리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 일단 지난 100일간 내가 배운 중요한 경험이라고 하겠다.

3. 그렇다면 제작자는 어느 지점에 타협해야 하는가?

에버노트가 그랬고 솜노트가 그랬듯이 결국 제작자는 예술가가 아니기에 성장만이 자기 제품의 수명을 지속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따라서 성장이 명확하게 답보되는 장치들을 다수 발견했다면 그것이 비록 사용성을 일부 해치거나 불편을 조금 가중하더라도 응당 적용을 긍정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스타트업은 알고 있는 모든 성장 방법을 총동원해도 부족할만큼 더 빨리 많이 성장해야 하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다 동원해도 성장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고, 성장을 하더라도 그게 폭발적 성장이 아니어서 도중에 주저 앉게 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장이 있어야 회사도 있고, 회사가 있어야 제품도 있는 것이므로 제작자는 디자인이나 사용성, 완성도, 기능에 포커스하는게 아니라 오로지 성장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솜노트는 여전히 가입 없이도 쓸 수 있다. 이틀에 한번 로그인 창이 뜨긴 하지만 여전히 X 버튼을 그대로 두어 끌 수 있게 했다. 이 X 버튼을 두고 안두고의 배려가, 바로 제품이 그저 불편한가 최악인가의 차이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로그인을 원치않는 사용자는 분명 불편해졌지만 여전히 선택의 자유가 있다. 네이버 메모는 작년말 별안간 로그인없이 잘 쓰던 사용자들을 막고 예고없이 로그인을 의무화했다. 리뷰엔 별 한개와 악플이 쏟아졌다. 물론 내부 운영 정책상 불가피한 이유가 있었겠지만 이렇듯 사용자에게 선택의 폭을 주느냐 안주느냐의 차이는 극렬했다. 자유를 두되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것. 그것이 제품이 성장하며 꾸준히 변화해야 하는 과정 속에서 제작자가 취해야 하는 방향성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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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실험과 변화의 반복적인 여정

실험과 성장을 확인하며 나부터도, 우리 멤버들도 제품에 타당한 훼손을 가하는 것에 대해 더 서슴치 않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너무 급하지도 과하지도 않게 하나씩 하나씩 붙여가며 솜노트를 작품에서 상품으로 만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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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같으면 조심스러워 했을 리뷰 유도 팝업을 붙여 1만건이 훌쩍 넘는 자발적인 리뷰를 받을 수 있었다. 물론 개중엔 리뷰 유도 팝업을 귀찮아하는 유저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오히려 그 팝업이 생긴 후 더 많이들 구글 플레이에 들어와 우리 팀에 칭찬과 용기를 북돋아줬다. 1만개가 넘는 리뷰를 읽으며 기쁘고 설렜을 우리 팀 제작자들의 기분이야 더 말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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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투두가 2.0으로 업그레이드 하고 나서는 솜노트 사용자들에게 전면 팝업을 띄웠다. 예전 같음 광고는 상상도 안했는데 이제는 필요하면 띄운다. 솜노트 2.0부터 메인 하단 영역과 전면 팝업, 설정 메뉴 하단 배너와 푸시 광고까지 원하면 언제든 뿌릴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광고 영역을 잡으니 우리는 이제 우리보다 더 작은 스타트업들을 위해 무료 배너 프로그램까지 시행하고 있다. 이미 10여개 스타트업이 선정되어 광고를 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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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솜투두 2.0이 나오면서 솜노트로 터놓은 영역에 자유롭게 광고하게 됨으로써 지표가 획기적으로 개선된 일도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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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건드려 본 것은 매출이다. 솜노트엔 솜프리미엄이라는 유료계정이 있는데 몇 가지 유료회원 전용 기능을 담아 월 3,900원, 연간 39,800원에 판매하고 있다. 솜노트 2.0 버전 들어서 솜프리미엄에 유료기능으로 들어있던 폴더 개별잠금이나 10GB 용량 등을 모든 회원들에게 무료로 풀어주며 솜프리미엄의 상품 가치가 추락하였는데 이로써 결제전환율이 급격히 저하되어 내부적으로 많은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솜노트 개발에 바쁘고 아직은 모수를 키우는 기간이기 때문에 결제전환율보다 중요한 지표들(가입전환율 등)이 있어 상품 자체를 고도화할 시간은 없었다. 그래서 좀 고심하다가 무료 계정에 광고 영역을 추가하고 솜프리미엄 계정은 광고를 제거했다. 광고가 없던 자리에 갑자기 생긴 광고라 사용자는 싫어할 수 있지만 결제하면 뺄 수 있다는 기회를 제공했다. 결국 솜노트 2.0 광고 삽입 후 사용자 클레임은 현재까지 제로(0)다. 사용자는 생각보다 관대한데, 우리는 괜한 걱정을 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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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한가지 더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만약 상품 구성에 변함이 없는데 특정 시점에 할인 오퍼를 주면 어떨까에 대한 실험이었다. 사실 게임이나 엔터테인먼트성 컨텐츠들은 이런 실험을 이미 워낙 많이 해왔고 축적된 노하우도 많을텐데 지극히 이성적인 제품인 유틸리티는 유료화를 위한 실험이 참 어렵고 공유되어 있지도 않다. 설사 공유되어 있다 하더라도 국가와 사용자층에 따라 또 천차만별일 수 있고..

해서 많은 것들을 직접 해보며 조금씩 배워나가야 하는데 힘들지만 그게 또 노하우다. 만약 그런 노하우를 우리가 오래 연구해 쌓아 놓으면 다른 신규 진입자가 시장에 들어와 비슷하게 제품을 따라한다 할지라도 연구에 기반한 제품 본연의 역량은 쉽게 따라오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이번엔 노트를 수십차례 이상 수정한 헤비 유저이면서 아직 솜프리미엄에 가입하지 않은 이들에게 일시적으로 30% 할인된 가격의 솜프리미엄 가입 오퍼를 보내 보았다. 이 배너를 통한 가입전환율과 가입전환에 걸린 시간이 다른 어떤 배너보다 효율이 좋았다. 그렇게 또 하나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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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결제전환율은 솜노트 2.0이 출시되며 솜프리미엄 혜택이 대거 줄은 2014년 2월 전달 대비 40%나 심각하게 감소했으나, 위와 같은 실험들 덕분에 3월엔 전달 대비 결제율이 65%나 상승하더니 4월은 3월 대비 추가로 31%가 성장했다. 상품 구성을 바꾼 것도 아니고 상품 가치가 오히려 크게 줄었음에도 그저 권유 시점과 배치를 조정한 것만으로 예전 수준을 회복하는 것을 넘어 크게 상회하기까지 한 것이다.

5. 그로스 해킹에 대하여

나는 여전히 그로스 해킹을 잘 모른다. 우리 멤버들은 아마 조금 더 공부를 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로스 해킹을 정말 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Between이나 이음처럼 모든 것을 데이터에 기반해 보지는 아직 못한다. 아주 기초적인 것으로 평가받는 퍼널이나 코호트 분석 등도 우리는 이제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그야말로 아직 걸음마 단계인 것이다.

하지만 지난 100일간 솜노트 2.0을 해오면서 느낀 것은 그로스 해킹이란게 뭐 대단히 어렵고 복잡한 개념이 아니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아마 이미 잘하고 있는 스타트업도 많고 상대적으로 좀 일찍 시작했거나 우리처럼 그런 용어가 나오기 전부터 이미 일을 하고 있어서 적용법을 모르거나 두려워하는 조직도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그런 후자들을 위해 쓴 이야기다. 결국 그로스 해킹이라는 것이 어떤 룰이 있어서 반드시 Google Analytics를 갖다가 퍼널 코호트를 세팅하고 이벤트를 잡고 분석을 하고 해서 되는게 아니라 그냥 1) 내 서비스와 데이터를 계속 쳐다보고 2) 목표하는 성장 지표가 무엇인지 명확히 하고(결제인지 가입인지 재방문인지) 3) 그 목표 지표의 성장을 위해 해야할 일들에 대한 가설을 세워 보고 4) 그 가설을 하나씩 제품에 적용해 보고 5) 지표가 성장하는지 보며 가설을 검증하고 6) 한 목표 지표를 거의 다 올렸으면 이번엔 새로운 지표 성장을 목표로 잡아 반복. 그러면 그게 곧 그로스 해킹이 아니겠는가 한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데이터에 100% 의존했다기보다는 오히려 감이나 느낌, 이렇게 될 것 같다 싶은 과거의 패턴 같은 지극히 정성적인 부분에 의존해 의사결정을 했다. 그렇게 해도 지표에 어쨌든 반영이 됐다. 그게 때론 긍정적으로, 때론 부정적으로 반영되어 다시 고치고 하는 시행착오를 겪었고 지금도 계속 겪고 있지만 말이다.

아무래도 100% 데이터에 기반한 의사결정을 하며 그로스 해킹을 하는 조직에 비해 우리가 시행착오는 더 많을 수 있다. 답을 찾아가는데 더 오래 걸릴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우리 조직은 데이터가 없어, 분석할 사람이 없어, 결과가 나와도 좋은건지 나쁜건지 측정을 못해’ 등등 여러가지 이유로 제품을 안건드리고 못건드리고 있다면 그것은 같은 돈과 시간으로 경쟁 제품보다 조금은 더 빨리 많이 성장할 기회가 있었는데도 방임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몰랐던 나도 하고 있으니 누구나 다 할 수 있다. 그로스 해킹이라는, 말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결국 별거 아닌 것은.. (이런 용어가 없었던 불과 3년전쯤까지만 해도 우리는 이것을 그냥 ‘개선’이라고 불렀던거 같다.)

6. 진심과 정성

그로스 해킹 얘기를 한참 하다 결국 감성적인 나는 또 감정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 솜노트 2.0 100일이 지나고 나서야 젤리버스 김세중 대표가 해준 말이 가슴으로 와닿는다. ‘사장이 바뀌어야 모든 것이 바뀐다.’ 그동안 회사 생존에 신경 쓰느라 제품은 제작 과정에만 참여했고 CS나 업데이트는 직접 챙기지 않았다. 지난 100일간은 일일이 고객 CS를 읽고 해외 리뷰를 보고 댓글을 달았다. 우리 팀의 CS를 보며 토론하고, 더 빠르고 고객이 원하는 답을 줄 수 있도록 함께 노력했다.

나는 아직도 열성적인 사장들만큼 부지런하진 못하지만 전보다는 많이 바뀌었다. 그리고 그런 우리의 노력들은 지표에 그대로 반영이 되고 있다. 이렇듯 우리가 진심을 다해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그 순간 지표를 확인하고, 다시 새벽에 잠들기 직전까지 지표를 보고 자는 (제품에 반쯤 미쳐있는) 시간들이 누적되고 모든 팀원들이 각자 자기 자리에서 진심으로 정성을 다할 때 성장은 알아서 따라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지난 100일간 배울 수 있었다.

아직 솜노트 2.0은 100일밖에 지나지 않았고 앞으로 갈 길이 더 멀지만 우리는 이제 작품이 아닌 상품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고 변화와 실험을 반복하고 있으며 목표 지표가 있고 진심과 정성을 다하고 있다. 그러므로 부족하나마 천천히 답을 찾아 갈 것이고 그러다보면 더 큰 성장과 배움은 자연스레 따라올 것이라고 믿는다.

혹자는 당연한 이야기를 길게 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참으로 미안하다. 내가 아는게 별로 없어서 그렇다. 짧은 배움을 적다보니 두서가 없었지만 가끔이나마 이렇게 배운 것들을 나눌 수 있도록 하겠다. 나처럼 잘 모르는 사람들의 시행착오를 좀 줄이는데 도움이 되기 위해서… 아무래도 과정에서 배우는건 참 많은데 공유할 시간이 별로 없다.

기회가 우리를 피해가지 않는 길

최근에 누군가의 추천으로 오랫동안 바래왔던 사업 기회를 얻게 되었는데 놓쳐 버렸다.

만나서 이렇다할 논리 없이 부탁과 떼를 쓰고 있는 나를 보았다. 한 시간쯤 대화하고 나서 바라던 결과를 얻지 못하고 돌아서는데 기회를 쟁취하지 못한 내 자신에 화가 났다. 그리고 나와 우리 제품의 가능성을 믿지 못하는 상대가 원망스러웠다. 그렇게 근래 들어 가장 아쉬운 미팅을 마치고 십분쯤 걷는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것은 원래부터 내것이 아니었다.’ 하긴 그토록 바라던 기회가 허탈하게 누군가의 소개와 추천으로 예고없이 내 눈 앞에 다가온 것이다. 나와 우리 제품은 기회를 잡을 준비가 덜 되어 있었고 즉시 놓쳤다.

그러고 보면 기회라는 것이 백날 노력한다고 오는 것이 아니라 인력으로 이해할 수 없는 지점 어딘가에서 불쑥 찾아오곤 하는데 그때 내가 얼마나 준비되어 있느냐가 딱 성장의 가능성인 것 같다. 우리는 머리로는 기회를 항상 바라고 있으면서 정작 그것이 예고없이 찾아 왔을 때 제대로 잡을 준비가 안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에게 소개와 추천을 한 사람은 그 기회를 스스로 쟁취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을 것이다. 그렇게 얻은 기회인데 나는 소개로 쉽게 얻었으니 똑같이 준비되어 있을리 만무하고 같은 성과를 기대할 수도 없을 것이다. 고로 그것은 원래 내것이 아니리라.

그러므로 깊게 아쉬워할 필요도, 화를 내거나 누군가를 원망할 필요도 없다. 나는 다만 다시금 배우는 것이다. 기회라는 것은 스스로 얻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스스로 먼저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정성껏 쏟아야 한다는 것을.

갑자기 주어지는 기회는 부응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어떻게 급조해 마음에 들었다손 치더라도 결국 오랜시간 서로에게 도움되는 비즈니스는 못될 것이다. 그러므로 더 오래 칼을 갈자. 더 쓸만한 무기를 만들어 놓고 우리에게 기회가 왔을 때 세상을 놀라게 할 수 있도록 내실을 쌓고 있자.

기회가 나를 피해갈 수 없도록 하자. 요즘 깊게 느끼는 것이지만 한쪽이 더 바라는 딜은 무조건 실패하는 딜이다. 남들이 우리를 바라게 하자. 그러기 위해 좋은 제품으로 칼을 갈고 우리 제품을 씀으로써 행복한 사람들을 더 많이 만들어 놓자. 그것만이 모든 딜에서 대등한 관계를 만드는 길이고, 기회가 어느 상황에서든 절대 우리를 피해가지 않게 하는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