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의 댓가

요즘엔 진짜 내가 어떻게든 회사를 살려내려고 발버둥을 치다보니 회사 주위의 바운더리 안에서만 내가 너무 좁게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20대 때는 정말 아무것도 안하고 딱 회사일만 했다. 죽어라고 했다. 연애도 운동도 여행도 거의 못하고 그냥 주중이고 주말이고 상관없이 오로지 일만 했다. 그렇게 해서 회사를 살려내고 다시 계속 다음 모멘텀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며 성장시키고 있지만 그 댓가가 너무 큰 것 같다는 생각을 이제서야 해본다. 만약 내가 회사를 지키지 못했더라면 오히려 그 바운더리를 본의 아니게 벗어나 더 넓고 다양한 경험을 했을지도 실은 모를 일이다. 그래서 젊을 때는 무엇이 잘된거고 무엇이 안된 것인지를 판단하기가 무척 어렵고 성급한 것 같다. 아무튼 굳건히 잘 살아남아 이런 얘기를 할 기회라도 가질 수 있는데 감사하고 아직 내 일천한 생각을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물론 감사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분명 크게 잃은 것도 많다는 사실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다. 분명히 처음에는 내가 선택한 길이었지만 중간에는 내가 선택했다기보다는 살기위해, 또는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이나 익숙한 일에 대한 관성으로 흘러온 면이 상당히 컸다. 사업이 원래 그런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시작은 내 의지로 하지만 과정과 끝은 내 맘대로 시점과 형태를 거의 정할 수 없는 것. 나도 나름대로 오래 짱구를 굴려 과정과 끝을 설계하지만 그대로 된 적이 거의 없다. 내 내공 부족이겠지마는 그런 점에서 연속적으로 회사를 세우고 매각하며 그 과정과 끝을 (내외부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것을 포함하여)비교적 통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선배들은 정말 존경스러울 수 밖에 없다.

건강한 기업문화

나는 우리 팀이 정말로 건강한 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오늘 세달간 진행했던 프로젝트를 드랍했다. 오픈 직전이고 이미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기에 아쉬움이 크지만 이게 실제 사용자에게 효용이 있으며 우리 회사의 전략 방향에 부합하느냐를 놓고 제작진 전원이 간단한 토론 끝에 평화롭게 드랍하기로 했다. 나는 우선 그런 논의가 오픈 직전에라도 불쑥 제안될 수 있는 문화, 그리고 그런 갑작스런 제안이라도 진지한 토론 주제가 될 수 있는 문화, 또한 전원 토론과 합리적 합의를 거쳐 프로젝트를 즉시 중단시킬 수 있는 과단성의 문화까지. 그런 점이 위자드웍스가 살아남고 계속 첫날의 생동감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가 아닌가 한다. 나는 사람에겐 한없이 따뜻하지만 일에 대해서는 냉정할 정도로 빠른 의사결정력을 지닌 이 팀이 아직도 참으로 건강하다고 믿는다.

분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기가 속해있는 분야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면 인기를 얻기는 참 쉽다. 하지만 적을 만들기도 쉽다. 적을 만들면 진짜 바꿀 수가 없다. 근본적인 변화는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짜 변화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은 조용히 준비해야 한다. 칼을 빼들어 휘두르는 순간 모두가 놀라 자빠질 정도로 철저히 오래 준비하며 재료를 모으고, 진짜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기르며 기다려야 한다. 문제를 차곡차곡 정리하고 대안도 생각하며 세 수, 네 수 앞을 미리 봐야한다. 그래야 진짜로 분야의 문제를 바꿀 수가 있다. 훨씬 더 영향력있게 실질적으로. 그러지 않고 그냥 마음 맞는 사람들 지지 받으며 공개적으로 입바른 소리만 하는 것은 사실 별로 의미가 없다. 더 둥글둥글해져야 내가 더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아직 멀어서 불의만 보면 불끈불끈하지만, 그건 정말이지 적만 만들뿐 큰 의미가 없다.

깊이의 자산

오늘 나보다 먼저 사업을 시작해서 10년째 한 회사를 하고 있는 선배를 오랜만에 만났는데 참 기분이 좋았다. 선배도 나도 성장해가고 있는 느낌이다. 하긴 시간 쓰고 몸 쓰고 했는데 배우고 성장이 없다면 모조리 헛일 한거겠지.

집에 가며 나중에 우리가 돈 많이 벌면 평소에 열심히 했던거 알고 있는 사장들 어려울 때 몇천 정도는 그날로 융통해줄 수 있는 스타트업의 그라민뱅크 같은거 만들자는 이야기를 했는데 마음이 짠했다.

돈 꾸어도 보고 빌려 주기도 해본 이들만 할 수 있는 exit 이후의 플랜이 아니겠는가 싶다.

누군가에게 돈 꾸러 전화하기 직전, 전화를 할까 말까 혼자 한참을 망설이는 순간이 있다. 그렇게 어려움을 무릅쓰고 전화하거나 찾아온 사람에게는 돈을 꿔주든 그렇지 않든 진심으로 따뜻하게 대해주어야 한다. 어떤 마음으로 나에게 어렵사리 전화했고 어떤 용기로 찾아오기까지 했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도 꿔줄 형편이 안되어 거절해야 할 때는 그 마음 알기에 곱절로 미안하다.

선배와 나는 걸으며 이 이야기에 정확히 공감했다. 그리고는 우리 같이 고생한 사람들이 많이 성공해야 생태계가 더 많은 이들을 사려깊게 챙길텐데 하는 생각도 했다.

아무래도 어려서 큰 돈을 번 사람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없이 망해간 회사들도 대표의 절망과 좌절, 직원들의 고난이 똑같이-어쩌면 훨씬 더 크게- 있었다는 사실을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는 차라리 젊을 땐 내가 직접 많은 것을 보고 수화기 들고 고민도 해보며 주위 사장이 하나둘 떠날 때의 그 망연자실한 표정과 마음들을 처절하게 겪어보는 것이 나중에 오히려 큰 깊이의 자산이 되지 않을까 한다.

아직 무지하게 멀었다. 많은 사람의 마음을 깊이있게 이해하려면 나는 지금보다도 훨씬 더 많이 오래 다방면으로 깨어져봐야 하겠지.

사장이 꼭 해야하는 것

사장의 일이라는 것이 모두 소통에 관한 일인 것 같다. 회사 주위엔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도 많고 이해관계가 같다 하더라도 서로 생각과 환경이 다른 사람도 너무나 많다.

그 사람들에게 현재 상황을 안내하고 앞으로 어디로 가고 싶고 왜 가야하는지 제시하며 그렇게 결정하게 된 과정을 상세히 설명해 한명씩 설득해야 하는 직무이지 않나 싶다.

그 과정은 참으로 외롭고 때론 오해와 억측 으로 마음에 멍이 들기도 한다.

사장에게는 회사와 사업의 현황에 대한 누구보다 많은 정보가 있고, 누구보다 많이 고민하고 있으며 또한 누구보다 이 사업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지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사장의 생각은 외부는 말할 것도 없고 내부의 이해관계자가 보기에도 다소 생소하고 급격할 수가 있다. 그들은 충분히 그렇게 느낄 수 있고 항상 설득해야 하는 쪽은 사장이다.

그게 유일한 사장만의 책무이고 회사가 성공했을 때 가장 큰 보상을 사장이 얻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장이 힘들어 설명과 설득을 멈추면 회사는 절대로 살아남을 수가 없다. 사장은 설득을 게을리해서도 안되고 그동안 나를 믿어준 사람에 대한 책임감과 지속적인 관계를 위하여 끝까지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만약 이해관계자중에서 내가 내린 결론에 반대하거나 의아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과정 중에 내가 투명하게 커뮤니케이션 하지 못했다는 것으로 인정하고 오히려 깊이 반성해야할 일이다.

물론 항상 솔직하게 하려 노력하지만 사업상 필요에 의해 투명한 커뮤니케이션을 약간 지연시켜야 하는 경우도 있게 마련인데, 그렇게라도 꼭 진행시켜야겠다고 감수한 일이 있다면 이후 어김없이 쏟아지는 이해관계자의 의문과 불신에 대해서도 응당 책임지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 나가야 한다.

나도 끝까지 모든 이해관계자들과 최대한 지속적이고 깊은 커뮤니케이션을 나누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아무리 바빠도 최대한 노력할 것이다. 그래야 한 사람이라도 더 같은 결론에 이를 것이고 설사 같은 결론에 이르지 못하고 끝내 헤어지더라도 ‘더 노력해볼걸’ 하는 후회가 남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쁜 사장은 아니었어”

1박2일 선생님 특집을 보다가 마지막에 어떤 선생님으로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에 한 선생님이 “나쁜 선생은 아니었다. 그 정도면 되죠.” 하는데 가슴이 짠했다. 이따금씩 나도 어떤 사장으로서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에 “그리 나쁜 사장은 아니었다”고 대답한 기억도 났다.

사실 헤어질 때 인격적으로나 금전적으로 큰 상처나 미안한 부분 없이 가급적 깨끗하게 정리할 수 있고 사소한 마음의 앙금도 다 풀고 헤어질 수 있다면 충분히 저리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어릴땐 참 못했는데 그렇게 많이 헤어지고 상처 주고 받고 해서인지 요새는 꽤 잘 헤어지는 것 같다. (잘 헤어진다는 표현 자체가 이상하지만 아무튼 만남 뒤엔 언젠가 헤어짐이 있으니 기왕 헤어지는 것은 다시 만날 때 웃을 수 있게 헤어져야 하리라.)

잘 헤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함께 일하는 과정에서가 더 중요하다.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업무적으로는 믿고 권한을 주며 최대한 모든 조직원과 솔직하게 커뮤니케이션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셋 중 하나라도 잘 안되기 시작하면 상호 믿음에 금이 가고, 결국 셋 다 망가지게 되는데 그럼 그 사람과는 좋았던 과정도, 웃으며 헤어지는 발전적 해체도 만나지 못한다.

그런 연유로, 회사를 떠나거나 다른 회사로 가고 나서 비로소 “그 사장이 나쁜 사장은 아니었다”는 말을 듣는 것은 사장으로서 최고의 찬사다. 과정이든 헤어짐이든 비교적 적절했어야 들을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 것이 돌아보면 특별한 경영 능력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그냥 나가는 그 순간까지 인간적으로 대우하고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정중하게 헤어졌는가 그것이 다였던 것 같다.

그 별거 아닌 것을 어릴 때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제도나 시스템, 평가나 복지, 온갖 사족으로 풀고자 했던 것 같다. 핵심은 그냥 마주보고 5분 “그동안 힘들었지? 정말 미안해. 다음에 다시 만나자”하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는데 그 시간이 어려워 나이 더 많은 이사들에게 맡기고 뒤에 숨기도 참 많이 숨었다. 정말로 한심한 시간이었다.

이제는 절대 그러지 않는다. 다 솔직하게 말하고 다음에 다른 곳에 가서 더 잘할 수 있도록 부족한 부분을 가급적 정확하고 실랄하게 얘기해준다. 하지만 악의는 전혀 없다. 오로지 그 사람의 성장만을 생각한다. (사실 살다 보면 내 부족한 부분을 따끔히 이야기해주는 사람은 점점 더 없어진다.) 그렇게 하니 오히려 근속 연수도 늘고, 떠나서도 회사 생각들을 많이 해준다.

결국 회사의 조직관리가 다른게 아니라 그냥 인간 관계다.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고 경영을 한다는 것은 지극히 오만한 일이자 회사에 대한 이미지와 내부 직원의 실제 느낌 사이에 큰 괴리를 만들어 내는 일이다.

나도 아직 다 터득했다 말할 수 있을만큼 훌륭한 사장은 아니지만 적어도 나쁘진 않았던 사장으로 잔잔히 기억될 수 있도록 조금씩 배우며 노력하고 있다.

이심전심 릴레이

최근 잘되는 회사들 중에 우리 회사 출신이 나가서 우리 회사 출신들을 참여시켜 좋은 회사를 일군 이들이 여럿 되는데, 그 중 어느 누구에게라도 지나가는 말로나마 “고맙다”는 인사 한번 듣지를 못했다.

내가 일일이 시간과 공을 들여 발굴하고 모은 멤버를 통해 사업을 시작하고 번창시킬 수 있었으면 몇년이나 지나는 동안 빈말로나마 감사의 말 한마디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싶어 사실 그간 몹시 서운했다. 적어도 나라면 저러지는 않을텐데 하면서..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들 입장이 대부분 이해가 된다. 일단 다들 스타트업이라 지금 앞만 보고 달려도 해피엔딩일지 아닐지 모르는, 그야말로 전력투구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때는 옆이나 뒤가 보이지 않는 것이 맞다.

오히려 인정 따라 마음 따라 옆도 잘해주고 뒤도 돌아보고 하다보면 그 회사는 제대로 될리가 없다. 남들은 앞만 보고 전력질주 하는데 과정에 도움 준 사람들 일일이 찾아가 챙길 때는 아닌 것이다 지금의 소중한 시간이.

따라서 스스로 거의 완전히 이해가 되었다. 돌아보니 나도 그리하지 않았던가. 지금 보면 온전히 내 노력으로 만난 것 같은 사람이나 기회들도 선배들이 좋게 봐주시고 슬쩍 밀어줘 얻은 경우가 적잖았다.

그러나 마음으론 감사해하고 있어도 나도 한 분씩 찾아뵙고 감사인사 드린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회사가 그런 마음의 여유를 줄 만큼 안정적이었던 적 없었던 탓도 있고 선배를 일부러 찾아가 그런 말을 하는 것도 여간 뻘쭘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리라.

그런 연유들로 나도 선배에게 그저 ‘이심전심’만을 바랄뿐 실제로 감사를 따로 전한 적 없기에 후배들의 모습도 모두 이해가 되었다. 외부에는 잘되는 듯 보이지만 결국 나와 비슷하게 다들 한치도 쉴새없는, 그야말로 아전투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생각에 이르니 그동안의 서운함이 점차 평화로워졌다. 선배들은 아실까나 생존조차 버거워 미처 전하지 못했던 나의 감사함을. 아마도 다 아시겠지만 언젠가 잘되서 마음에 조금이나마 여유가 생기면 꼭 한분 한분 찾아뵙고 옛 이야기 나누며 차 한잔 기울이고 싶다.

그러고보면 이곳에서 오래 일을 하면 할수록 선배들이 거쳐간 감정의 길을 그대로 되짚으며 비슷한 마음을 갖게 되고, 후배들의 입장도 내 과정에 반추해 이해하게 되며 조금씩 한 인간으로서 쓸만해질 기회를 얻게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