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의 기쁨

역시 제작자는 제작을 할 때 가장 즐겁나보다. 요새 솜노트 2.0을 만들며 간만에 비교적 큰 제작을 하고 있는데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기쁘다. 물론 매일 출몰하는 주요 의사결정들과 현실적인 돈 문제, 그리고 사람들의 사기 문제, 주주들과 미디어의 기대 문제 등 여러가지를 컨트롤하며 가야하므로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단 나 스스로가 하루하루 행복하다.

결과가 물론 중요하지만 제작자는 제작과정 자체에서도 행복을 느끼는구나 싶다. 그래서 제작을 멈추지 못하는 것이겠지. 중독이라면 중독이다 이것도. 물론 솜노트 2.0은 정말 좋은 제품이다. 이것이 점점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제품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이 제작 과정의 어려움을 모두 상쇄시키는 것 같다. 나는 이 제품이 세상에 나오고, 많은 사용자들이 좋아하고 일상에서 쓸 일을 상상하면 기쁘다.

그리고 그런 제품을 만들 소중한 기회를 나에게 주는 위자드웍스라는 터전이 있어 행복하고, 그 안에 모여 함께 고군분투하며 빠듯한 일정에도 흐트러짐 없는 열정을 보여주는 우리 팀이 있어 기쁘다. 내가 그동안 힘들었던 결과 이 작은 제작의 터전과 훌륭한 제작진, 그리고 우리를 믿는 주주와 고객들을 만날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그 어떤 대통령을 모시고 한 행사도, 수천 명을 앞에 둔 키노트도, 검색어 1위를 만든 방송도, 수십명 직원에 계열사 만들어 폼 잡던 시간도 다 하나 같이 부질 없었다. 시간 지나고 나면 남의 기억은 물론 내 기억 속에서도 가물가물한 그저 신기루와 같은 영광들이었다 그것들은.

오히려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나를 가슴 뛰게 하는 일은 제작뿐이었다. 그것만큼 기억에 남는 일도, 배움을 많이 얻는 일도 없었다. 다른 더 재미난 일은 없을까 하고 안해본 일이라면 최대한 겪어보았다. 더러 재미있는 일들도 있었지만 제작만큼 미치게 하는 일도 없었다. 내가 지금 두려운 것이 있다면 사회적 지위나 나에게 어떤 기회가 덜 오는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가 제작자로써 쓸모 없어지는 순간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공부를 계속해야 할 것이고 현명한 후배들과 교류하며 옛날에 서비스 좀 만들었던 바보만은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10여년 전 좋은 제작자로 이름 날리던 선배들이 지금은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면 경각심을 느낀다.

오늘날 나에게 꿈이 있다면 딱 한번이라도 전국민, 나아가 전세계에서 쓰는 서비스를 우리 손으로 만들어 보는 것이다. 2001년 고1때 만든 무료 도메인 서비스 이지로(ez.ro)는 월 300만명이 썼었다. 2008년 스물다섯에 만든 위자드팩토리 위젯은 한달에 1,600만명이 이용했다. 2010년경 우리가 만든 모바일 앱 중에 100만 다운로드를 넘긴 것도 3개나 있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 장기적으로 의미있는 성공은 거두지 못했고, 나와 당시 함께하던 제작자들의 기억 속에만 남았다. 그래서 몹시 미련이 남았다. 내가 만든 서비스가 그동안 쓰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더라면 깔끔히 포기했겠지만 그렇지가 않았다. 포기할만하면 다섯 번의 시도 속에 꼭 한 두 번은 100만 서비스가 나왔다.

지금 만드는 솜시리즈는 150만이 쓴다. 이걸 더 많은 사람이 쓰고 상업적 성공까지 거두게 하려면 아직 갈 길이 아주 먼데, 이제는 멈출 수가 없다. 더 좋은 제품이 되면 더 많은 사람이 쓰고 상업적 성공도 언젠가는 거두게 되리라고 믿는다. 지금은 그 믿음이 제작자로써 내가 가진 밑천의 전부다. 물론 BM을 잘 설계하고 하루하루 제품에 대한 의사결정을 잘하는 것들이 중요하겠지만 크게 보면 결국은 좋은 제품을 만들겠다는 굳은 의지와 오래 버티는 끈기에서 나머지 모든 문제는 서서히 하나씩 풀려가는 것 아닌가 한다.

그것이 외주 용역이 아닌 컨슈머 서비스를 만드는 (변변한 투자도 받지 않은) 제작팀이 박한 현실에 진중하게 마주하는 유일한 해법이 아니겠는가 싶다. 그런 믿음을 갖고 돈 안되는 솜노트에 거의 2년 반 넘게 바쳤더니 실제로 풀리는 문제들이 있고 우리는 계속 지표의 체크포인트를 넘어 시장의 신뢰와 다음 체크포인트까지 갈 수 있는 자원도 조금씩 얻게 되곤 한다. 예전엔 용역 개발을 같이 하며 제품 만드느라 엄청 오래걸렸던 일들이, 제품의 품질 하나만 믿고 라면 먹으며 한 우물만 파니 지표로 보여지고 자신감이 생긴다. 용역으로 버는 돈은 우리가 많이 해봤지만 돈 쓸 때 외에 전혀 즐겁지 않기 때문에 차라리 우리 제품을 만들면서 라면 먹는 것이 백번 행복하다. 지표가 있고 좋은 제품이라는 시장의 신뢰만 쌓여간다면 기회는 계속 이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멈추지 않고 좋은 제품을 만드는데 앞으로도 집중할 것이다. 나는 아직 좋은 제작자가 되려면 거리가 멀었지만 적어도 개선되고 있다고는 믿는다. 이전 제품보다 이번이 좋았고 다음 업데이트가 어제보다 낫기 때문에 나와 우리의 다음 제품은 지금보다 뛰어날거라고 믿는다. 지금이야 비록 150만이 쓰는 제품이지만 여기에 목숨 걸고 최선을 다하면 그 다음엔 300만, 어쩌면 천만 제품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제품이 그 노력을 했는데도 150만 밖에 쓰지 않는다고 의지를 잃고 포기한다면 300만, 천만 제품을 만들 가능성은 앞으로도 다시는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요새 처음이거나 두 세 번만에 수백만명이 쓰는 모바일 제품을 만들어내는 제작자들은 정말로 부럽고 존경할만한다. 그런걸 볼 때마다 ‘내가 ‘born mobile’ 세대가 아니어서 그런가’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는데, 사실 그 역시 핑계일 것이다. 나보다 한참 선배들도 모바일에서 수백만, 수천만 사용자를 지닌 제품을 만드는 이들이 있기에, 지금도 앞으로도 공부하고 노력한다면 못만들 제품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본인이 어디쯤 위치할 것이냐를 잘 정하는 일일테다. 제작자냐 경영자냐 그 어디 중간쯤이냐. 나는 스스로 CEO나 경영자라 칭하기도 부끄러운 그냥 ‘사람 모아 무언가를 하면서 밖으로 열심히 광 팔러 돌아다니던 사람’쯤이었다면 이제는 제작자로 오래 살고 싶고, 좋은 제품을 만들고 싶어 죽겠는 사람으로 명확히 자리하고 있다. 이것이 한 회사의 대표로서 바람직한가 따진다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우리 회사는 지금 product company이고 각자 흥미를 갖고 일할 수 있는 쪽에 집중하는 것이 전체 조직에도 도움이 될 것이기에 아직은 우리 멤버들, 주주들과 믿음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싶다.

최근 어디에 갔다가 ‘왜 제작자로 살기를 원하는가?’ 란 질문을 받았는데 대충 이런 대답을 했다. “이 지구상에 살아가는 70억 인구가 대부분 남이 만든 제품의 소비자로 살아간다. 생산자로 사는 사람, 한 번이라도 남이 쓰는 제품을 만들 기회를 갖는 사람은 지구상에 0.1%나 될까? 온전히 나와 내 동료들의 머릿 속에서 나온 아이디어를, 우리 손으로 직접 버무려 세상에 던져볼 기회라도 얻어보는 것. 그리고 그렇게 던진 제품이 실제로 세상에서 소비되고 인류를 한 단계 진보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다면 그 삶은 매우 의미있는 것 아닌가 한다. 그래서 당장은 부족하지만 계속 제작을 반복하고 배우며 언젠가는 나도 좋은 제작자가 되어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나마 내가 기여할 수 있는 IT라는 분야에서.”

내가 그동안 부족함에도 제작의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도와주신 분들께 감사함을 가진다. 많은 후배들도 제작자로 살면서 제작의 기쁨을 누려 보았으면 한다. 나처럼 어려서 우쭐대지 말고 작은 터전에서 소수의 팀과 세상에 기여할만한 크고 의미있는 일을 했으면 한다. 그렇게 하고 있으면 언젠가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아진 내가 찾아갈지도 모른다. 기왕이면 같이 만들자고 더 좋은 제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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